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토니오 이노키 (문단 편집) === [[전성기]] 시절 === 전성기 시절의 안토니오 이노키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적 프로레슬러였다. 가운을 걸치고 목에 수건을 두른 채 원기왕성하게 달려와 링에 올라, 항상 강조한 '''투혼'''을 그림으로 그린 듯한 경기를 보여준 뒤 폴을 따내고는 벌떡 일어나, '''하늘을 향해 번쩍 주먹을 들어 올리며 "다아-!"라고 외쳤는데, 이 제스처는 이노키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엄청나게 많이 [[패러디]] 된다. 일본의 영상매체나 활자매체 등에서 왠지 엄청 뜨거운 표정으로 주먹을 들어 올리며 괴성을 지르는 장면이 있다면, 십중팔구 이것의 패러디라고 보면 될 정도다. 그러나 국내 정발되는 만화 등에서는 이 특유의 기합성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노키를 아는 사람한테는 약간은 아쉬운 면이 있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4b7d1bc1f3237d0e9d64445f5c1ca2c0.jpg]] [youtube(bbhx6M3qrtw)] '''[[연수베기]](延髄斬り 엔즈이기리)를 창시'''했으며, 이 밖에도 업도미널 스트렛치의 강화판인 만자 굳히기(卍固め. Octopus hold)가 트레이드 마크로 꼽힌다. 시각적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으로 보이고, [[자이언트 바바]]의 노텐 챱이나, 김일의 원폭 박치기 같은 큰 상징성을 지니는 기술을 고안하겠다고 해서 만든 게 지금의 연수베기라는 설이 있다. [[드롭킥]]을 어색하게 시전해서 이런 약점을 어느 정도 커버하려고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파일:/pds/200805/13/51/d0031151_48299688acdca.gif]] 안토니오 이노키는 [[슬리퍼 홀드]]라는, 격투기나 실전에선 사람 잡는 기술이지만 프로레슬링에서 시간 때우기 및 경기 조율용으로 사용하는 서브미션 홀드를 '''[[슬리퍼 홀드|마성의 슬리퍼 홀드]]'''라는 이름을 붙여 최고 위상급의 [[피니쉬 무브]]로 쓴다. 시전 폼도 그렇고, 이노키가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두꺼운 체형은 아닌지라 좀 볼품없어 보이지만, '''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다.[* 안토니오 이노키의 슬리퍼 홀드가 최강급의 피니쉬 무브의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국회의원]] 시절부터였다고 한다. 즉, 사실 이노키의 마성의 슬리퍼는 전성기가 지나고 나서부터 사용한 기술이고 그 전에는 주로 엔즈이기리나 만자 굳히기 등을 더 많이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의외로 이 기술이 이노키의 피니시 홀드치고는 생각보다 유명하지 않은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파일:external/pds8.egloos.com/d0031151_48313dbc54c1d.gif]] 심지어 급속으로 상대를 실신시켜 서브미션승도 아닌 '''핀폴승'''을 따내며 [[초살]]시킨 적이 있을 정도다. 일단 걸리면 어지간한 선수들은 3초 내에 힘이 빠지면서 그대로 실신한다. '프로레슬링은 실전에서도 강하다!'라는 그의 철학 '이노키즘'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다. 움짤에서 당하는 상대는 바로 투혼 삼총사의 필두 [[무토 케이지]] 점차 프로레슬링계에서 위상이 떨어졌지만 [[스즈키 미노루]]나 [[이이즈카 타카시(프로레슬러)|이이즈카 타카시]] 등 안토니오 이노키를 따라 슬리퍼 홀드를 피니쉬 무브로 쓰는 선수가 2010년대에도 남아있고, 북미권에선 [[로디 파이퍼]]가 즐겨 쓰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안토니오 이노키처럼 엄청나게 짧은 시간 안에 상대를 실신, 또는 실신 직전으로 몰고 가는 수준으로 강한 설정이 붙게끔 한 선수는 프로레슬링 역사상 '''없다.''' 이런 전설적인 내용들에 반해 추문도 제법 많은 편이다. 그 중 가장 큰 사건으로는 '신일본 횡령사건'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회사 자금을 빼돌려 브라질에서 벌이는 사업에 투자했다는 사실이 들통나면서, 단체의 일부 중진들이 이노키의 퇴진을 요구하는 쿠데타를 벌인 적도 있다. 그러나 당시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방영권을 쥐고 있던 [[테레비 아사히]]가 '''이노키 없는 신일본은 중계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하여 유야무야되기도 했다. 안토니오 이노키라는 레슬러가 얼마나 카리스마적인 인물인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70년대에 이노키가 거물이 된 뒤에도 한국, 일본을 오가며 김일과 여러 차례 대전을 벌였는데 하나같이 명승부로 회자되었고, 덕분에 한국 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 경기에서 일본인인 이노키는 물론 악역을 맡았지만, 김일의 [[필살기]]였던 [[박치기]]를 맞아도 버티고 일어나기도 하는 '강력한 악역'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김일이 말년에 무관심 속에서 병마로 고통스러워할 때, 이따금씩 김일을 찾아와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줘서 '의리파'라는 인상까지 남겼다. 거의 1년에 1번은 찾아왔다고 한다. 은퇴는 1998년 4월 4일에 [[도쿄돔]]의 '''파이널 이노키 토너먼트'''흥행에서 하였는데, 이날 모인 관객은 약 7만 명으로, 역대 도쿄돔 일본 프로레슬링 사상 최다 관중 동원이었다. 메인 이벤트에서 격투가로도 유명한 [[돈 프라이]]를 상대로 은퇴 시합을 가져 [[코브라 트위스트]]로 승리를 거두었다. [youtube(SPqip6CzgZQ)] 2010년에 "미국이 아닌 아시아 국적의" 아시아인으로써는 최초로 [[WWE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게 발표되었고 동년 3월 27일에 헌액되었다. 이때 미리 써온 연설문을 영어로 더듬더듬 읽고는 마지막에 '''"다아-!"'''를 외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